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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온전히 나답게 - 한수희

 

2019년 7번째 완독 한 책.

한수희 작가님의 책은 이번이 3번째다.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나는 이 작가님 글이 나에게 참 잘 맞다. 정서적인 측면이나 생각하는 사고 같은 게 굉장한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원래 지난 일에 미련을 품는 타입은 아니다. 쿨해서가 아니라 생각이 짧기 때문이다' -본문 중-

나도 그렇다. 20대 초반에는 그렇게 후회라는 감정 때문에 굉장히 나를 갉아 먹는갉아먹는 시간이 많았는데, 30대가 넘어가고선 전혀 그렇지 않다. 20대 내내 나는 나를 갉아먹는 후회, 미련을 떨치고자 했고 그 덕분에 단단히 단련되었는지 이제는 억지로 들춰내지 않는 이상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지난 일에 미련이나 후회가 없다.


'마흔부터의 얼굴은 부모님이 물려주신 얼굴이 아니라 내가 만든 얼굴이니까' -본문 중-

아직 마흔이 되진 않았지만 진작 부터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어릴 적 사진을 보다가 지금 거울을 보면 무슨 모진 풍파를 맞았는지 참 거칠어진 느낌이다. 관리의 중요성을 깨닫는 요즘이다.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면서 사는 것만이 최선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다.' -분문 중-

근래에 독서량을 늘리면서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다. 목적 지향적인 삶을 어릴 적부터 끊임없이 강요받아왔다. 교육이 그렇고 사회적 분위기가 그렇다. 우리는 어른들에게 또는 타인에게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준비가 항상 돼있어야만 했다. 그 질문을 받았을 때 좋은 대답을 하지 못하는 상황은 굉장한 패배감을 안겨준다. 곰곰이 생각해봤다. 내 꿈은 과학자였다가 의사였다가 20대에 들어서는 내가 좋아하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20대 중반 즈음 나는 꿈꾸던 게임 개발자의 삶을 살기 시작했고 그렇게 꿈을 이뤘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우리는 꿈을 이루고 나서도 또 꿈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거나 자신에게 반문한다. 꿈은 죽는 그 순간까지도 있어야 하는 것일까. 꿈도 그냥 꿈을 꾸어서는 안 되는 느낌이다. 양질의 꿈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사람이 동의할만한 거창한 그런 꿈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꿈의 거리는 꾀나 가까운 것이다. 당장 오늘을 무탈하게 보내는 것. 내일은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업무량을 채울 것. 이런 것들이 항상 내 꿈이다. 너무 먼 미래의 꿈은 꾸지 않는다. 너무 멀고 닿을 수 없는 꿈은 나를 너무 괴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오히려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채워 많은 시간을 보냈을 때의 그 자리가 훨씬 꿈에 근접할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타인에 대해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엄청난 자만일지도 몰라. 어쩌면 상대방 역시 내 걸음걸이나 버릇 같은 것들에 넌더리를 내고 있을 수도 있겠지. 사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도!' -본문 중-

자만하지 말지어다. 타인에 대한 뒷담화는 내가 다이어트보다도 더욱 철저하게 통제하려 하는 악마의 유혹이다. 어릴 적에 나도 숱하게 남을 욕하고 수근 거려 왔다. 그러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동료들에게 먹잇감이 된 경험을 겪고 나니 뒷담화가 얼마나 좋지 않은 것인지를 통렬히 깨달았다. '나'라는 존재도 한 달이 다르고 한 해가 다르다. 하지만 뒷담화 가깝게는 어제. 멀건 무려 십여 년 전의 사람을 그때의 모습을 통해 판단하고 비판하곤 한다. 곧 있을 사촌의 결혼식이 두렵다. 친척이야 말로 가장 가까운 정글의 왕들이다.


'어딘가에 돈을 쓰고도 아깝지 않으려면 경험에 쓰는 것이 가장 낫다' -본문 중-

매우 동의한다. 내 소비의 대부분은 위의 가치관에서 비롯된다.


'나는 학교 다니기를 너무나 싫어하던, 하지만 12년 내내 개근상을 탄 평범한 학생 중의 하나였다. -본문 중-

나는 제도권에 대한 본능적인 반항심이 있다. 체감적으로 대한민국의 교육 시스템과 유교적 풍토를 몸서리치게 싫어했지만 겉으로는 성실하게 따르는 것에 열중했다. 물론 성적은 그걸 속일수 없었지만...
그런 이유로 나는 모순된 감정을 느끼며 자괴감을 가지는 시간이 너무 많았다. 공부는 왜 못해서... 살은 또 왜 이렇게 쪄가지고... 대학은 왜 졸업 못해가지고.. 대기업은 왜 못들어가서... 이런 패배감이 20대를 지배했었는데, 다양한 경험에 치중하고 업무의 만족도를 높이고 좋은 책들을 읽어오며 이런 자괴감이 굉장히 쓸데없는 것임을 알고 내려놓는 것에 열중했다.
인생은 모두 같은 터널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공부는 모두가 잘해야 하고 외모는 모두가 연예인 같은 미남 미녀여야 하고 굴지의 대기업에 모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정답이라면 정답은 극히 일부의 삶이고 대게는 오답의 삶을 살고 있다. 그 획일화 된 터널을 통과하지 않는 삶은 무용지물일까? "이 사람은 상위 1프로야" 란 말을 듣고 "뭐가 상위 1프로야?"라는 질문을 던진다고 했을 때 우리는 돌아오는 대답이 부 또는 명예 쪽일 것이다라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떠오른다. 나는 무엇을 할 때 충분히 만족스러운지에 대해 고민하기로 했다.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할 만한 거 말고, 생판 모르는 사람이 부럽다 할만한 그런 거 말고 오롯이 내가 그냥 이 것을 할 때 제일 재밌고 행복하고 시간이 아깝지 않다고 생각할 그것. 그것을 찾기로 했다. 굉장히 소소한 것들이다. 이렇게 일요일 아침에 조용히 앉아 한 시간이 넘어가도록 이 글을 쓰고 있는 것도 그런 것의 범주안에 들어간다.

 

사실 굉장히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책이었음에도 공감의 정서가 큰 책이다보니, 그 어떤 책보다도 생각하는 시간이 길었던 책이다. 작가님의 생각이 나와 정반대에 위치한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생각이 많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때그때의 삶을 사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내 생각을 정리했다가도 내일의 나는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걸을 수도 있다. 생각은 계속 바뀐다.

부다는 앉아서 너무 생각을 많이 한탓에 득도의 반열에 오른 것일까? 마치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모든 경우의 수를 확인해서 더 확인할 것이 없어져버린 것일지도...